시작은 제일기획이었다.
스물네 살의 프로듀서였던 그는 삼성 글로벌마케팅그룹의 의뢰로 장편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. 한 편의 필름을 완성하기 위해 11개국을 돌며 Fortune 500 기업의 CEO와 임원, 경제학자, 교수, 디자이너, 마케터, 미래학자들을 직접 인터뷰했다. 완성된 작품은 DVD에 담겨 전 세계 삼성 최고경영진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책상 위에 놓였다.
그때부터 그의 일은 단순히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. 복잡한 생각을 하나의 메시지로 만들고, 서로 다른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것. 그 문장이 그의 진짜 이력이 되었다.
경영진의 회의실, 학자의 연구실, 미래학자의 작업실. 통찰이 요구되고, 말보다 태도가 먼저 읽히는 방들. 그런 방에서 먼저 평가받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다. 그는 그 자리에 익숙해졌다.
다음 방은 회의실이 아니었다.
2016년, 그는 빅뱅의 다큐멘터리 〈MADE〉를 기획하고 프로듀싱했다. 조명이 꺼진 무대 뒤,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. 카메라 앞에서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는 사람들. 완성된 필름은 그해 SBS를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.
그가 던진 질문은 날카로웠다. 날이 선 것은 질문이었지, 태도가 아니었다.
정상에 있는 사람 앞에서 방은 늘 한쪽으로 기운다.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고, 웃음이 조금 빨라지고, 모두가 조금씩 자세를 고친다. 그는 고치지 않았다.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. 서두르지 않았다. 스타를 스타로 대하지 않았다. 그저 한 사람에게 물었을 뿐이다.
어려운 질문은 누구나 던질 수 있다. 어려운 대답을 받아 내는 일이 어렵다. 질문을 던진 뒤 그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. 농담으로 무마하지 않았고, 다음 질문으로 도망가지도 않았다.
기다렸다.
돌아온 것은 방어가 아니었다. 담백하고 진솔한, 편집이 필요 없는 문장들이었다. 〈MADE〉는 그해 가장 성공적인 4K 다큐멘터리로 남았다.
사람을 열게 한 것은 질문의 기술이 아니었다. 질문을 던진 뒤, 그 침묵을 견디는 사람의 무게였다.
